최치원 제가야산독서당

김준태 참깨를 털면서

2020. 10. 21. 15:24

산그늘 내린 밭 귀퉁이에서 할머니와 참깨를 턴다.

보아하니 할머니는 슬슬 막대기질을 하지만

어두워지기 전에 집에 돌아가고 싶은 젊은 나는

한 번을 내리치는 데도 힘을 더한다.

세상사에는 흔히 맛보기가 어려운 쾌감이

참깨를 털어 내는 일엔 희한하게 있는 것 같다.

한 번을 내리쳐도 셀 수 없이

솨아솨아 쏟아지는 무수한 흰 알맹이들

도시에서 십 년을 가차이 살아 본 나로선

기가 막히게 신나는 일인지라

휘파람을 불어 가며 몇 다발이고 연이어 털어 낸다.

사람도 아무 곳에나 한 번만 기분 좋게 내리치면

참깨처럼 솨아솨아 쏟아지는 것들이

얼마든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정신없이 털다가

"아가, 모가지까지 털어져선 안 되느니라"

할머니의 가엾어하는 꾸중을 듣기도 했다.

 

 

 

•할머니와 화자의 태도를 대비함으로써 순리에 따르는 삶의 지혜를 일깨워 줌. 세속적 가치를 좇는 현대인들의 욕심을 경계하는 의식을 담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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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슬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 촉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 샤쯔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은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늬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조 앉어 대구국을 끓여 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히야 어느 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골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어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 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나를 지나간다
-하눌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스 쨈'과 '도연명'과 '라이넬 마리아 닐케'가 그러하듯이

 

 

주제 - 피폐한 현실 속에서 느끼는 쓸쓸함과 외로움의 정서, 그리고 이에 굴하지 않으려는 삶의 의지


화자는 현재 처해있는 가난하고 외로움, 사랑과 슬픔의 상황을 초생달, 바구지꽃, 짝새, 당나귀, 프랑시쓰쨈, 도연명, 라이넬 마리아 릴케의 상황으로 외적 확장을 하면서 자신만의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음.


고향을 떠난 화자가 '흰 바람벽'에 비친 내면 풍경을 통해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어려운 현실을 운명적으로 수용하는 데서 나아가 이를 극복하려은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흰 바람벽'은 내면 성찰의 매개체 역할을 하는데, 화자의 쓸쓸하고 외로운 내면을 보여 줄 뿐만 아니라, 사색과 성찰을 통해 자신의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하고, 앞으로의 삶의 자세를 다지게 하는 기능을 한다. 부정적인 현실 속에서도 고결함을 잃지 않으려는 삶의 자세가 잘 드러났다.


1~6행: 흰 바람벽에 비친 쓸쓸하고 애처로운 삶의 단면
2~16행: 흰 바람벽에 비친 그리운 사람들
17~23행: 흰 바람벽에 비친 내면 인식, 운명론적 체념과 고결한 삶의 의지
24~29행: 자기 운명에 대한 긍정적 수용과 자신의 처지에 대한 극복 의지

출처: 백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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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며 피는 꽃 - 도종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주제 - 시련과 역경 속에 완성되는 사랑의 삶

전체가 2연 10행으로 구성되어 있고, 1연과 2연이 대칭구조를 이루고 있으며, 통사구조의 반복과 변조를 통해 운율감을 조성하고 주제를 강조하고 있다. 시의 전체내용은 ‘흔들리’는 시련 속에서도 ‘줄기를 곧게 세운’ 꽃을 통해 어려움 속에서도 성숙해지는 사랑을 1연에서 나타내고, ‘바람과 비에 젖’은 꽃을 보며 시련 속에서 완성되는 삶을 2연에서 말하고 있다. 이 시에서 ‘꽃’은 삶 자체를 상징하며, 1연에서 ‘줄기’가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흔들림’과 ‘젖음’은 자신의 의지와 달리 타인에 의한 방황, 고통 등을 상징하는데 2연에서 ‘젖지 않고 가는 삶’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1연에서의 ‘흔들림’과 ‘사랑’이 2연에서 ‘젖음’과 ‘삶’으로 변조되어 나타나는데 각 시어는 시련과 역경을 내포하는 것으로 의미가 동일하다.

표현상의 특징으로 '-으랴'와 '-나니'의 감탄적 어미의 반복을 통해 운율감을 형성하고 있으며, ‘어디 있으랴’는 설의법의 반복을 통해 고난의 필연성과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화자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다양한 수사법과 함께 평이한 언어를 사용하여 꽃이 흔들리거나 젖는 모습에 대한 장면을 연상하게 함.



이 작품은 꽃이 피는 평범한 자연현상을 인간의 삶에 접목하여 인생의 진리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바람에 흔들리고 비에 젖는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는 것처럼 우리 삶의 방황, 고뇌, 고통, 슬픔 등은 우리의 삶을 성숙하게 하고 완성시키는 것이므로 이를 부정하거나 회피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수용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흔들리며 피는 꽃 (한국현대문학대사전, 2004. 2. 25., 권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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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3편

2020. 7. 28. 11:1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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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섭 저녁에

2020. 7. 9. 21:29

 

 

저녁에

김광섭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 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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